
이 책은 다니엘이라는 인물이 속해 있던 클럽에서 사람들이 죽어나간 기록을 소설의 형식을 빌어 일기의 형식을 빌어 서술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 다니엘과루시디오만이 살아남아서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10명의 사람들이 똑 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죽어가는 것이니 소설적 흥미라거나 이런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플롯이 동일하고 그 플롯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죽어나가는 방법이 아니라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들은 죽음의 순간에 대해서 대비를 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왜 음식인가? 그들의 죽음은 타살 혹은 자살?
의문의 요리사 루시디오의 환상적인 음식을 먹는 만찬장에서 마지막으로 여분의 음식을 먹은 아벨부터 시작해서 매번 만찬이 열릴 때마다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의 여분을 먹은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죽는다. 아벨은 알지도 못하고 죽었고 다른이들은 자신이 죽을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담담하게 혹은 기꺼이 죽음의 만찬을 행한다. 어쩌면 이들에게 있어서 만찬은 최후의 만찬이며 최고의 만찬이며 생의 최고의 절정의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의 절정의 순간을 자신의 생명과 바꾼 것이다. 죽여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으나 죽을 것을 알고 음식을 먹은 이들은 자살을 한 것일까 아니면 살해를 당한 것일까?
죽음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흔히 사용하는 목메기 , 동맥 자르기 ,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기 , 수면제 과다 복용 , 독극물 투여 혹은 음용 ,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방버 등등 매우 많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는 먹는 것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인간의 본능이라고 해야하는 것 중에 식욕과 성욕이 있지 않는가? 식욕은 탐이다. 이 글에 등장하는 사람은 먹는 것을 적당히 하는 것이 아니라 미식가를 자처하며 즐긴다.. 탐한다. 어디선가 누군가가 탐하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이 글의 등장 인물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탐하고 그것으로 인해 생의 마지막 종장을 맞이한다. 파멸의 장이다..
스펙토르의 방문 혹은 죽음 서비스
다니엘에게 스펙토르가 방문하게 되고 음식을 통한 안락사를 기반으로 한 사업을 제안한다. 죽음의 순간을 두려워 하는 인간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기쁨을 맞이하면서 죽을 수 있도록하자는 배려가 담긴 범죄에 가까운 사업을 제안한다. 현대인들의 이름모를 암들 그리고 처해지는 죽음의 순간들을 당연히 인간인 이상 두려워하고 공포스러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죽음까지도 서비스되어버리는 상황이라면 희망이란 단어는 우리 인간의 단어 사전 어디에도 기대어 쉴 곳이 없어지지 않을까 그 많은 희망들의 자리를 절망이라는 덩어리가 차지하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주민등록증을 받는 순간 죽음의 시간이 정해지는 상황극을 본 적이 있는데 갑자기 이 이야기와 겹쳐진다. 죽음이란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일이다. 자신이 죽는 순간을 식욕을 채우면서 죽는다는 것은 죽음의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는 것이 되지 않을까? 우리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신다. 아름다워야 해 그렇다면 죽음의 순간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을까? 밖으로 보여지는 아름다움과 자신이 느끼는 아름다움이 같을 수 있을까? 정말자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성을 추구할 수 있을까?
나는 매일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네버엔딩스토리 내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굿타임 내 멋대로 살지만.. 자유로우니깐♡ 나이키 스타 나무 그늘 아래 차칸소 ♡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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